여긴 방랑의 계절입니다.

2012. 9. 24. 22:54하루의로맨스가영원이된날들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제 손길도 뜸한 이곳에 종종 흔적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요 근래 몇몇 분들이 이곳이 어떤 공간이냐는 물음이 있었지만 딱히 설명할 것도 없는 여기는 방랑의 계절, 저만의 온실,

배낭 속을 뒹굴고 있는 수첩 같은 저만의 공간입죠.

그때그때 생각나는, 들리는, 보이는 것들을 남겨 놓는 곳입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낙서장입니다.

가끔은 즐거움에 날뛰며 말랑한 것들이 남겨지다가도 또 가끔은 겹겹이 쌓이던 예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너절한 인생살이 등등..

아직은 청춘이란 것이 살아 있는지 폭발하는 분노의 게이지를 주체하지 못해 써발겨진 찌꺼기 같은 것들이 남겨질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들과 소통을 하고 있나요.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저도 세월이라는 것을 보낼수록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의 수는 많아져도 가끔은 그 대화라는 것이

건조하디 건조하기 짝이 없어 말라비틀어진 과일 껍질 마냥 무미건조함에 둥둥 떠다니다 나무꾼의 선녀처럼 하늘로 훠이 훠이

휘발되어 희미해져가는 것을 자주 겪고 있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라는 것을 하고 있다 해도 소통이란 것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페북이며 트윗이며 혼잣말이 늘어나고 있더군요. 저 역시도 이곳이 그런 셈이죠.

개인적인 프로필과 인맥이란 사슬고리를 제시하지 않는 이곳은 저에겐 제 방처럼 편안함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이며 인간관계, 생각보다 점점 빨라지는 듯한 하루.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할 거란 생각이 문득 올라와 글자들을 늘어놓습니다.

적당한 타협에 적당한 웃음에 적당하게 함께 차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뿜으며 적당하게 썩은 미소로도 적당하게 작별도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상황만큼 딱 적당하게 일어날 수 있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중간만큼의 삶.

그런 삶을 위해선 적당할 만큼의 무료함이란 것을 자기만의 공간에서 즐겨봐야 하지 않을지..

그것이 어쩜 조금은 덜 미칠 수 있게 하는 중용의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시선도 목소리들도 잠시 꺼둔 채.


이상하게도 우리 인간이라는 사람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말이 많아서 그런지 표현력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으면 벗을수록 사람들 사이에 있느니 차라리 자연 속에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느 낯모를 사람과 함께 있느니 보다 말 없는 식물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그리하여 왠지 하나의 숲은 어느 한 생애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천륜처럼 돌아가는 흐름 속에서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극히 단순해지기입니다.

모두 잘 먹고 잘 싸고 얘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어머니 아버지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도 하고 동생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또 데이트도 더 하고

여행도 가고 땡땡이도 치고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그렇게 잘 지내고 있나요.

그러고 그리고 그러면서 숨쉬기. 또 그리고 살기.

모두 잘하고 있나요.


이런 얼굴 없는 모니터 속에서도 조금은 숨 쉬어 보자고요.


결국은 또 이렇게 조잘조잘 낙서장에 한 페이지를 채웠네요.

가끔씩 드는 생각으론,

정작 메모해야 할 건 워낙 중요하니까 당연히 기억하겠지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정작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 잔뜩 메모를 합니다.

메모한 건 별 쓸모도 없는데 자꾸만 기억나고 중요한 건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고,

그래서 머릿속은 계속 차곡차곡 쓸모없는 기억만 가득 차고,

특히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기막힌 생각들은 머릿속에 지우개를 넣은 듯 다음날은 모두 새하얗죠.

모두 휘발되기 전에 끄적끄적 거림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이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모두 황홀하게 반짝거리는 마음들은 쉽게 끄지 마시고

잠시 눈을 지그시 감으면 달달하던 판타지던 무언가의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그럼 이만 굳밤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