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껌 종이에 들국화는 내게도 떠나지 않고

2012. 10. 4. 22:25하루의로맨스가영원이된날들


1980년에는 광주 민주 항쟁이 일어났고, 존 레넌은 총 맞았다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 갔으며, 해태에선 들국화라는 껌이 출시됐고, 나는 세상에 대고 첫 울음을 터트렸던 때였다.

더 많은 소소한 일들도 있었을 테지만 대략 짜 맞추기식으로 아는 건 이것뿐이라 딱히 연관도 없는 것들을 몇 개 내놓았다.


2012.09.24 월요일 저녁.


점점 나태해지고 있다는 증거물들인 방대하게 쌓인 수업과 밀린 과제들을 등 뒤에 놓고 블로그 포스팅을 막 마치던 시간,

주말 놀러와 예고편이 생각나 고민 0.1초도 없이 티브이 앞에 이미 나는 앉아 있었다.

갓 태어나신 리드보컬 전인권

갓 태어나신 분을 보살피는 작곡가이자 베이스 최성원

드럼에서 드럼을 맡고 계신 주찬권

들국화의 멤버가 세월의 흔적을 온 한 몸 가득 담아서 앉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전인권이라는 분의 젊은 모습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마저도 실제로 본 적도 찾아 본적도 없었지만

남다른 아련함이 있다는 걸 젖어드는 볼을 만지며 다시 한번 알아가고 있었다.


올여름 역시 여차여차한 일들로 지산을 동행해 보자던 손을 끝내 못 잡고는 해바라기 속에서 청춘시대를 보내던 중

몇 통의 메시지들이 무더기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는 동안에도 '드디어 라디오헤드가 한국에'라며 멋진 멜로디로 변해진 그들의 라이브를 듣고 보려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곳에서 그들은 한국의 진짜 살아 있는 전설을 보게 돼서 그랬던 걸까.

1/10의 개런티 앞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고 달려간 한국 록 밴드의 위상을 그 강한 울림과 포오스를 보게 돼서 그랬던 걸까.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생중계를 받았다.

기분 좋고 가슴 어느 부분도 뜨겁고, 덕분에(?) 나는 그날 모두와 함께 아침까지 음주가 진행됐다.

음악인도 아닌 내가 무슨 연유에서 그러냐며 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가슴에만 묻어둔 채로 먼 곳에 있는 한 남자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밴드 생활, 기타, 색소폰, 오디오, LP들, 말도 안 되게 내 눈엔 쓸 때 없이 크게만 느껴졌던 모니터, 오토바이, 장발,,,,

내방 책장 낡은 앨범 속 1985라 찍혀 있는 사진을 보면 얼굴보다 더 큰 헤드폰을 끼고 들국화 1집 LP를 보고 있는 모습이 있다.


사진으론 남겨져 있지만 기억이... 당시에 그 헤드폰에서 무엇이 흐르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한 남자의 취향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수많은 뮤지션의 음악들 속에서도 자주 들었던

장현, 장덕, 신중현, 송골매, 조용필, 들국화, 김현식, 김광석, dire straits, beatles, zztop, doors, gary moore, fleetwood mac, scorpions 등등 등등..


생각해보면 딱히 손꼽을 것도 없이 그냥 나의 유년시절 속엔 그 한 남자도 기억 속 풍경에는 늘 BGM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는 우리 곁을 바람처럼 떠났으며 남겨진 건 조금씩 낡아져가는 그때의 기억과 몇몇의 앨범과 멜로디들뿐이다. 더 어릴 적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람처럼 흘려보내어 지워버리고도 싶었다.

말짱 허튼 반항일 뿐이었다. 부인해도 소용없는 내 모습엔 사라지지 않는 MAN이 있다는 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론 생각의 어느 한편이 조금은 편해졌다.


시간이 세월이 얼마나 지난 지도 모르는 날

혼자 서기의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독립생활을 하기 위해 이사를 하기 전날,

그동안 살아오며 손 안에 품 안에 가져봤어도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들 사이에 그래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 몇 가지를 챙기다가

몇 시간을 방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들 사이에 그대로 앉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커버의 사방이 흐늘흐늘해져 글씨는 뿌옇게 번지고 이너 슬리브는 글씨가 다 번진 채로 엉망이 되어버린

들국화 1집과 김현식 vol.4집 LP가 있었다.

분명 알고 있던 것들인데도 생소하게 느껴지던 그 낡은 모습들 안에는 전에도 미처 몰랐던 그 한 남자의 흔적을 보게 돼서 그랬던 것인지 억지로 참았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노여움과 그리움(?), 비탄과 공허함 뭐 그런 만감이 교차하더니 끝내는 무언의 초연한 눈물만 흐르는 것 같았다.

들국화 앨범 안에는 껌종이와 노트의 한 페이지를 뜯어 당시 20대의 들끓는 청춘 앞에서 관조 섞인 그의 생각들이 나열돼 있었다.

정의에 돈에 양심에 사랑에 대한, 단조롭고 간략하게 써져있는 그 글귀에선 그대로 그 남자가 보였다.

그때 그 시절 그런 생각들을 했음에도 결국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런 종잇조각의 관념적 글 나부랭이와 음악만을 남겨 놓은 채로. 무언가의 미움이 가득 찾음에도 그것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방 벽 한편에 걸려있다.


덕분일까,

들국화 멤버의 중후한 모습에 기억조차 가물거려 그 모습마저 사라져 버렸던 기억 속 20대의 한 남자의 형상이

모니터를 보는 내내 조금씩 서서히 멤버의 모습에 매치되어 머릿속에선 프레임에 맞춰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다시 초연해졌다.

꿈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 현실도피였는지 낭만 주객(?) 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곁에 머물렀다면 아버지라 불렸을 것이다.

어딘가 어디에서도 후회란 없으시길.